고대에는 달구벌국(達句伐國)의 중심지로 지배자가 거주하였으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둘레를 따라 토성을 쌓았다. 달성의 중요성은 고려·조선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세종 때 달성서씨 구계(龜溪) 서침(徐沉)은 달성(달성토성)을 국가에 제공하며 보상을 사양하고 고을 백성들의 환곡 이자를 줄여줄 것을 요청하여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대구지역에 오래도록 미담으로 전해왔으며, 『대구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달성은 대구부 관아로부터 서쪽 4리에 위치하며, 평야 지대인 대구 도심에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이다. 임진왜란 때인 1596년(선조 29) 일시적으로 경상감영을 이곳에 설치하고 성벽을 석축으로 보강하였으며, 1599년(선조 32)에는 달성 내에 향교를 건립하여 1605년(선조 38)까지 운영하였다. 달성은 관리들이 방문하여 연회를 베풀고 활쏘기를 하였으며, 선비들의 유람 장소였다. 달성을 노래한 한시와 그림들이 남아 있다.
근대에 달성은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09년 1월 순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일제는 이곳에 대구신사(大邱神社)를 설치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광복을 꿈꾼 청년들은 달성공원에서 광복회(대한광복회), ‘ㄱ당’ 등 항일 비밀결사를 결성하고 투쟁했다.
해방 후 대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대구부립박물관(대구시립박물관)이 1947년 달성공원에서 개관하였다.(1959년 폐관, 유물 경북대학교로 이관, 경북대박물관 개관) 1966년 8월 대구신사 건물들을 철거하였고, 1969년 현대식 공원으로 정비하여 1970년 동물원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달성공원은 ‘대구달성(大邱達城)’이란 이름으로 국가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시는 2024년부터 대구대공원을 조성하여 달성공원 동물원을 옮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달성 정비 복원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대구달성(달성공원) 역사에 대한 정리와 시민 공유가 필요하다. 달성공원과 그 주변은 대구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답사 장소이기도 하다.
